어느새 나도 ‘안중근’… ‘위국헌신’ 가슴에 새기다
배우들 몸 사위에 진지한 분위기 관람
日 야욕에 불끈, 거사 결의 장면에 박수
2부엔 장병들도 참여, 소통의 시간 가져
육군1기갑여단 장병들이 다목적홀에서 열린 정훈연극 ‘장군! 안중근’ 2부 순서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몰아내는 상황극 연출 장면
장병들이 진지하게 관람하는 모습. |
“동지들! 때가 왔소. 손가락을 자르며 한 맹세는 이날을 위한 것이니. 우리 원수 이토의 심장에 총알을 박으러 갑시다! 다 같이 외칩시다! 대한독립 만세!”
지난달 26일 저녁 9시 육군1기갑여단 다목적홀. 어둠이 짙게 깔린 이곳에 때아닌 “대한독립 만세!”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대체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1기갑여단은 이날 예하 105기보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정훈연극 ‘장군! 안중군’ 공연 관람 시간을 마련했다. 육군본부와 한국연극협회가 공동 기획·제작한 이 연극은 딱딱한 정훈교육에서 벗어나 전문 연기자들과 장병들이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정훈교육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육군은 지난달 13일부터 계룡대 초연을 시작으로 다음달까지 야전 부대를 돌며 총 20회의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 농담하던 장병들, 어느새 안중근 장군에 100% 몰입
공연을 위해 입장한 장병들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동료와 농담을 하는 장병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졌었나?”라고 묻는 장병도 있었다. 안중근 ‘장군’은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장면으로 연극은 시작됐다. 배우들의 강렬한 몸 사위에 키득거리던 장병들은 점차 말을 잃어갔다. 전범기를 든 이토가 야욕을 드러내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는 장병도 있었다.
10여 분 뒤 드디어 안중근 장군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난스럽던 장병들은 이미 현실에 안중근 장군이 나타난 것처럼 빠져들어 있었다. 조국의 아픔 앞에서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절규하는 안중근 장군과 “한 번뿐인 목숨, 이왕 죽을 바에는 값있게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대화가 이어지자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공연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계속됐다. 안중근 장군이 거사를 결의하는 장면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토를 쏘는 절정의 순간에는 환호성도 울려퍼졌다. 안중근 장군의 법정 열변에,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와 나누는 절절한 대화에 장병들은 완전히 빠져들었다. 안중근 장군의 유언을 마지막으로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공연장에는 한동안 적막만이 맴돌았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안중근 장군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2부는 장병들이 참여하는 시간이었다. 우선 소감 발표부터 시작됐다. 이용현 일병은 “연극을 통해 우리 민족이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며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장군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남은 군 생활 동안 나라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장병들이 직접 을사늑약을 막아내는 상황극이 진행됐다. 쭈뼛거리던 장병들은 “을사늑약을 막아냅시다!”라는 배우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기야 거의 모든 장병이 무대 위로 난입(?)해 이토를 몰아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누군가 외친 “대한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목이 터져라 따라 하기도 했다.
마지막 순서는 ‘안중근 장군 되기’. 장병들은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동지들과 결의를 다지는 이 장면을 각자의 마음을 담아 재해석했다. 끼 넘치는 장병들의 애드립이 더해지자 관람석은 금세 웃음바다로 변했다.
공연이 끝난 뒤 손정국 상병은 “제대로 된 역사와 국방의 의무를 생각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준우 상병은 “부대에서 연극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다채로운 형식의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장군! 안중근’ 총괄 기획 민경호 연극협회 사업국장
민경호 한국연극협회 사업국장이 육군1기갑여단 전격회관에서 연극 ‘장군! 안중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중근 장군의 삶을 통해 진정한 군인정신 되돌아보기를…”
“연극이 다소 무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병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철학이 있는 연극’을 선택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육군1기갑여단에서 만난 민경호 한국연극협회 사업국장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 국장은 이날 부대에서 펼쳐질 연극 ‘장군! 안중근’을 총괄 기획한 연출가다.
민 국장은 안중근 장군의 삶을 통해 장병들이 진정한 군인정신을 되돌아보기를 소원했다. 단순히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닌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내가 안중근 장군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총을 잡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라고 고민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봤다고 한다. 그는 “비록 대극장과 다른 다소 열악한 환경이지만 올바른 가치를 심어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민 국장은 마지막으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장병들의 자살 문제에 대해 애정 어린 말을 남겼다.
“대사 가운데 ‘한 번뿐인 삶, 어떻게 하면 값지게 죽을 수 있을지 생각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장병들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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