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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무기

"마지막 한 구의 유해까지 찾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000년 4월3일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 328고지에서 유해발굴을 하던 장병들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6.25전쟁 당시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와 '최승갑' 이란 이름 석자가 뚜렷이 새겨진 삼각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유품의 주인은 아내와 딸을 두고 전쟁에 참가한 고(故) 최승갑 하사로 밝혀졌다.

 

육군 주도하에 한시적으로 시작된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첫 성과를 올린 발굴유해였다.

 

고 최승갑 하사의 유해발굴 사례는 2003년 1000만명 관객을 모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로 활용되며 많은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국방부 직속기관으로 6.25전쟁 당시 희생된 13만여명 유해가 매장돼 있는 장소의 소재를 파악하고 발굴을 수행하는 부대다.

 

또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거나 유가족에게 돌려주는 모든 과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12년 유해발굴사업 추진 지역

 

 

당초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육군 주도하에 한시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해가 거듭될수록 커져가면서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지난 2007년 이 분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를 모델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됐다.

 

이 과정에서 사업 주관부서도 육군본부에서 국방부로 전환됐고 2008년에는 6.25전사자 유해발굴 등에 관한 법률도 제정돼 국가 영구사업으로 법적 뒷받침이 마련됐다.

 

유해발굴감식단은 300여명이 8개 발굴반과 계획, 조사, 발굴, 감식, 지원 등 5개과로 구성돼 유해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2009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청사도 별도 개관해 감식실, 유해보존실 등 과학적·체계적 감식여건을 갖췄다.

 

중앙감식소는 JPAC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전사자 신원확인 연구소로 연간 1000구 이상의 전사자 인골과 유품을 분석하고 있다.

 

감식단은 6.25전쟁 당시 원하지 않던 전쟁을 준비없이 치뤄 전사자를 체계적으로 수습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기록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현재 전사자 유해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에 퍼져있는 유해의 소재를 찾기 위해 험한 준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기도 하며 끼니를 놓쳐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그러나 감식단은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부대구호를 가슴에 품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오늘도 전국 곳곳의 산천을 누비고 있다.

 

2012년 유해발굴사업 목표

 

 

이같은 노력 결과 지금까지 감식단은 총 6965구(아군 6014구, 적군 951구)의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비록 발굴된 유해가 찾아야 할 13만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긴 하지만 유해발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연도별 발굴유해 숫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기 전까진 발굴유해 숫자가 매년 100여구에 불과했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370여구로 늘어나 2009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1000구 이상을 발굴하고 있다.

 

올해 유해발굴은 지난 3월6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개토식을 시작으로 오는 11월말까지 총 35개 사단급 부대들이 참여하며 전국 65개 지역에서 연인원 10만여명이 임무를 수행한다.

 

감식단의 올해 목표는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1300구 이상,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DNA 시료채취 4000개 이상 등을 달성하는 것이다.

 

또 조사분야 인력보강이 결정돼 올해 7월1일자로 전사자 유가족 탐문팀이 조직될 예정이어서 더 많은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