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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설악산 저항령에서 산화한 호국영령

 

 

"오늘 우리는 설악산 전투에서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곳을 찾아갑니다."

오전 7시, 6ㆍ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주경배 발굴과장과 김재학 3군단 유해발굴팀 통제장교와 함께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를 출발했다.

 

수렴동 계곡을 20여분 올라가다 왼쪽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흐르는 계곡물을 옆에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3시간여를 걸어 저항령 능선에 도착했다.

여기서 또다시 숲 속으로 난 백두대간 종주길을 따라 남쪽으로 20여 분을 걸었을까,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급경사의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안갯속에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바위들뿐.

30여분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해발 1천400m 저항령 고지 정상에 도착했다.

 
 설악산 능선 6.25 전사자 유해발굴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14일 오후 강원도 속초 설악산 저항령
능선에서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앞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저항령 고지에는 아침 일찍 현장에 올라온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단원과 육군 12사단 발굴지원병들이 곳곳에 흩어져 숲과 돌 밑 잠들어 있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수습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주 과장의 안내로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몇 곳을 돌아봤다.

전사자 유해 1구가 발굴된 서쪽 능선 경사면의 한곳을 찾았다.

총알이 관통하면서 부서진 철모 내피, 찌그러진 수통, 형태만 남은 허리띠, M1소총탄, 그리고 전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인식표가 보였다.

돌 틈 사이에 낀 전투화에는 이 신발 주인공의 발뼈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쇠로 된 작은 케이스도 총알이 관통해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유해발굴 현장서 나온 부서진 철모 6ㆍ25전사자 유해발굴이 진행 중인 해발 1천400m 설악산 저항령 고지에서 발굴된 부서진 철모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주경배 발굴과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주 과장은 '이 철모는 총알이 관통하면서 부서졌다"고 설명했다.

정황상 전사자가 여러 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두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또 다른 발굴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녹슨 철모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총을 맞아 구멍이 뚫린 철모였다. 철모 부근에는 이끼가 낀 전사자의 머리뼈도 보였다.

전투화 밑창, 탄 클립, 소총탄 등 다수의 유품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14일 하루에 발굴한 유해만도 11구, 유해발굴이 시작된 지난달 21일 이후 지금까지 모두 24구가 발굴됐다.

 
누구의 인식표일까? 6ㆍ25전사자 유해발굴이 진행 중인 해발 1천400m 설악산 저항령 고지에서 발굴된 인식표로 추정되는 유품을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주경배 발굴과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고지 이곳저곳에 전사자의 유해가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처럼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던 이곳 저항령은 어떤 곳인가?

해발 1천708m의 대청봉과 1천600m의 황철봉 사이에 있는 저항령은 1951년 5월7일부터 17일까지 국군 수도사단과 11사단이 북한군 6사단 및 12사단과 혈전을 벌였던 곳이다.

국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며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나아가 향로봉 지역의 북한군까지 격퇴해 설악산 일대를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곳의 전사자 유해발굴은 지난해에야 시작됐다.

백두대산 종주에 나섰던 등산객들이 저항령 일대에서 사람뼈가 발견된다는 신고를 해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해 5월 1차로 저항령 고지 전사자 유해발굴을 전개했으며 당시에는 65구를 발굴했다.

 
전사자 유해 뒤에 뜬 무지개 6ㆍ25전사자 유해발굴이 진행 중인 해발 1천400m 설악산 저항령 고지 능선에 14일 오후 유해 운구를 준비하는 병사들 뒤로 옅은 무지개가 떠올라 눈길을 끌었다.

주경배 과장은 "전국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 저항령과 같은 고지대는 없다"며 "이 높은 고지에서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후 3시, 저항령 정상에서는 이날 발굴한 유해를 산 아래로 운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11구의 유해 앞에 간단한 제를 올린 유해발굴단 단원과 육군 3군단, 육군 12시단 유해발굴팀은 거수경례와 묵념으로 예를 표했다.

태극기가 덮인 유해가 담긴 관을 가슴에 안고 하산하는 육군 12사단 발굴지원병들이 발길을 옮기는 능선에는 자욱한 안갯속에 피어난 희미한 무지개가 이들을 환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