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12사단 GOP이기완대대 정현준 일병과 어머니 이애희 씨가 GOP철책에서 지형정찰을 하고 있다. |
정 일병의 어머니이자 성악가인 이애희 씨가 장병들을 위해 홍난파의 ‘사랑’을 불러주고 있다. |
“누구나 세 분의 당신을 모시고 있다. 세상을 처음 열어주신 ‘엄마’, 세상을 업어주고 입혀주신 ‘어머니’, 세상을 깨닫게 하고 가르침 주신 ‘어머님’….” 고(故) 김종철 시인의 유고집 ‘엄마, 어머니, 어머님’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엄마’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기도’라고 노래했다.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이름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해도 부모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님은 항상 아들 걱정뿐이다. ‘잘 지낸다’는 아들의 씩씩한 말에도 부모님은 늘 아들이 걱정스럽고 그립기 마련이다.
GOP에서 감동의 선율 선사한 어머니
육군12사단 GOP이기완대대에서 근무하는 아들 정현준(23) 일병을 만나기 위해 어머니 이애희(50) 씨가 지난 1일 부대를 찾았다. 어머니 손에는 부대 아들들에게 전해줄 치킨과 피자가 가득 들려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차로 1시간20여 분을 달려 하늘과 맞닿은 듯한 GOP부대에 도착했다.
정 일병은 어머니를 발견하자마자 반가워하며 “정말 어머니께서 GOP까지 오실 줄은 몰랐다. 여기서 뵈니 더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성악을 전공한 이씨는 현재 대학에서 성악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기자가 장병들을 위한 노래 선물을 제안하자, 어머니는 프로답게 가곡 홍난파의 ‘사랑’과 아리아를 부르며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다. 잠시나마 힐링을 한 장병들은 이씨의 노래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이씨는 이어 아들과 함께 생활관을 둘러본 뒤 직접 GOP철책을 따라 지형정찰에 나섰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들과 같은 생활관을 쓰는 장병들과 병영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현준이 잘 생활하고 있어요? 혹시 힘들어 하면 옆에서 잘 챙겨주세요.” 이씨는 아들이 군 생활을 잘하기만을 바랐다.
부대를 둘러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정 일병과 어머니. |
외할아버지의 혼이 깃든 부대
지난해 8월 입대한 정 일병은 군 생활의 첫걸음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독일과 홍콩에서 7년간 외국생활을 해 집단생활보다는 개인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 때문에 적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보직이 GOP작전병이라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상황근무 중에 실수해서 질책 받을 때는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습니다.”
정 일병이 힘들 때 버팀목이 돼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이씨는 정 일병에게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외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수도사단 1기갑연대장이었어요. 당시 이곳 GOP 지역과 향로봉 일대를 적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우들을 잃으셨대요.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전우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고 늘 말씀해주셨어요.”
그의 외조부는 4대 12사단장을 지낸 고(故) 이용(예비역 소장) 장군이다. 어머니에게 외조부 이야기를 들은 다음 정 일병은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저와 전우들에게 이곳을 믿고 맡겼는데 그 믿음을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 수 없었어요. ‘GOP부대에 근무하는 우리는 특별히 국가와 국민을 대표해 태극마크가 새겨진 MP 완장을 착용하고 있다’는 대대장님의 말씀이 어느 순간 다르게 와닿더라고요.”
그런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이씨는 “아버지가 GOP를 잘 지키라고 현준이를 이곳으로 보낸 것 같다”면서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현준이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 몫 이상 하는 멋진 선임 될 터
정 일병이 힘들어할 때마다 동기들과 선임들이 옆에서 공감하며 그를 이끌어 줬다. 그는 “군 생활을 하면서 외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끈끈한 전우애를 느꼈다”며 “전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작전과장 배수석 소령은 정 일병에 대해 “처음에는 군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했지만 지금은 업무에 적응해 곧잘 해낸다”며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해 활용도가 높은 자원”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두 사람 몫 이상 하는 작전병 사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부족하지만 후임에게 멋진 선임이 되고 싶고, 그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군 생활을 이어가겠습니다.”
정 일병에겐 꿈이 있다. 전역 전 꼭 군복을 입고 외조부가 잠들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하는 거다.
“외할아버지께 이전과 다르게 성장한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게 단단한 조국을 물려주고, 또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감사의 편지]
엄마! 훈련소에서 헤어진 것이 엊그제 일인 것 같은데 벌써 9개월 가까이 지났어. 사실 나는 입대하면서 군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엄마에게 많이 미안했었어. 아버지는 해외에 계시고 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 돼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버지 대신 집안의 기둥이 돼야 할 맏아들이 군대로 간다는 게 미안했거든.
그런데 내 걱정과 달리 엄마와 동생은 나 없이도 잘해줘서 너무 고맙게 느껴. 나 또한 군대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랐는지 알게 됐어.
엄마! 엄마는 통화하면서 여전히 나를 걱정하던데 이제 더 이상 내 걱정 하지 마. 난 외할아버지가 복무하신 자랑스러운 12사단에서 근무하고 있어. 할아버지와 선배 전우들이 가꾼 이곳은 낯설거나, 북한군과 총을 맞대고 있는 위험한 곳이 아니야. 적이 감히 침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외부적으로 단단하고, 내부적으로는 가족처럼 사랑과 깊은 정이 넘치는 곳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지금은 비록 우리가 잠시 떨어져 있지만 비온 후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힘든 시기를 겪고 나면 우리 가족은 이전보다 더 빛나고 발전할 거라고. 그러니 밖에서 날 응원해줘. 나도 우리 가족을 여기서 응원할게!
항상 가족을 생각하는 맏아들, 현준이가.
[아들에게 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 현준이 보아라!
준아! 네가 입대하던 날, 늦었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육군훈련소 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너의 뒷모습을 놓칠세라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어느덧 9개월이란 시간이 흘러갔구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12사단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소식에 엄마는 가슴이 뛰었단다.
아…그곳. 엄마가 초등학교 다닐 때 네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가족 전부가 12사단을 방문한 적이 있었거든.
‘이런 게 인연인가’ 언뜻 스쳐가는 생각도 잠시 ‘그곳은 최전방인데’ ‘겨울에 무지 추울 텐데’ ‘설마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 등등 여러 가지 걱정이 밀려왔단다.
그리고 생각 나니? 네가 GOP로 들어간다는 말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엉엉 울었던 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가 한없이 부끄럽구나. 지난번 네가 휴가 나왔을 때 늠름하고 씩씩해진 모습을 보고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단다. 이렇게 군 생활도 잘하고 몸과 정신이 건강해져서 진짜 사나이가 되어가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란다.
현준아, 최전방에서 열심히 네 직무에 충실하며 나라를 잘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 우리 가족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와 네 전우들 덕분에 오늘도 편안히 두 다리 뻗고 단잠을 잘 수 있으니 말이다. 너 또한 네 전우들을 믿고 단잠을 자겠지? 오늘 밤도 좋은 꿈 꾸길 바라며 늘 건강하고 또 건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