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3함대 장애군무원 3인
엄지·검지 손가락 없이도 차량 완벽 정비...천남철 주무관
서기풍 주무관...십자인대 파열-재활 거쳐 정비 달인으로
엄지손가락 절단에도 일등 요리사로 우뚝...김병수 주무관
“남보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 남방해역 수호를 위한 전투근무지원에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해군3함대에는 전투근무지원 임무에 심혈을 기울이는 장애군무원 3인방이 있다.
천남철(50)·서기풍(38)·김병수(38) 군무주무관이 주인공이다.
남방해역 수호에 기여하는 해군3함대 장애군무원 3인방. 왼쪽부터 서기풍·천남철·김병수 군무주무관.
천 주무관은 시설대대 수송중대에서 차량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육군3사단에서 병사로 복무하던 1986년 불의의 사고로 왼쪽 엄지·검지손가락을 잃었다. 차량정비 ‘달인’을 꿈꾸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였다.
그러나 천 주무관은 좌절하지 않고 자동차 관련 자격증 3개, 중장비 자격증 3개를 취득한 뒤 93년 2월 3함대와 인연을 맺었다. 천 주무관은 ‘장비 수명 연장과 안전사고 예방’을 목표로 150여 대의 차량에 대해 완벽 정비를 지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문도·흑산도·추자도 등 도서 지역 파견 차량을 기동정비함으로써 격오지부대의 원활한 운영을 보장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해군참모총장 표창, 함대사령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천 주무관은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조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정비대대 선거직장에서 근무하는 서 주무관은 공군1전투비행단에서 복무 중이던 2000년 12월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그는 피나는 재활을 거친 후 2002년 9월 해군3함대 정비군무원으로 당당히 입사했다.
어느덧 13년차가 된 그는 건축도장 기능사,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 면허, 지게차 운전 기능사 등 다수의 자격증을 바탕으로 함정 무결점 운용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서 주무관은 “내 업무는 개인의 능력보다 동료와의 협동·호흡이 더 중요하다”며 “함대 전투력을 높이는 데 디딤돌이 되는 부대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주무관은 본부대대 조리군무원이다. 그는 2000년 6월 육군포병학교에서 복무 중 왼손 엄지손가락이 절단됐다. 칼을 다뤄야 하는 그에게 손가락 절단 사고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조리학과 교수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그는 시름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선배의 적극적인 권유로 다시 칼을 잡았다.
송원대학 호텔조리학과를 다니던 그는 2005년 전남 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요리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후 2007년 해군사관학교에 입사했고, 2012년 2월 3함대로 자리를 옮겨 급식 질 향상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조리병들에게 자신의 요리 실력을 아낌 없이 전수할 뿐만 아니라 진로상담을 해주는 멘토로서도 칭찬이 자자하다.
김 주무관은 “신세대 장병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리 개발에 전력투구하겠다”고 말했다.
“군 근무 오랜 꿈이자 행복”
40여개 부대의 전투물자·물품
불편한 다리 딛고 꼼꼼히 체크
육군1군수지원사령부 정의천 주무관
각종 전투물자 관리에 전력을 기울이며 완벽한 군수지원업무를 수행 중인 육군1군수지원사령부 정의천 주무관. |
“군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오랜 꿈이자 행복입니다.”
182㎝의 훤칠한 키, 넓은 어깨와 탄탄한 가슴,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환한 미소. 육군1군수지원사령부 예하 보급대대에 근무하는 정의천(31) 주무관의 첫인상이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5살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허벅지 아래를 절단했다. 그러나 남들처럼 나라를 위해 군 복무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군무원이 돼 꿈을 이뤘다.
정 주무관은 현재 소모유지물자 관리담당관으로서 군직부대의 각종 물자와 수리부속을 관리·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는 남들보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창고에 들러 40여 개 부대의 전투물자와 물품을 꼼꼼히 살핀다. 그는 이런 성실한 근무자세를 인정받아 최근 ‘자랑스러운 황소인’으로 부대 표창까지 받았다.
사실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사고로 다리를 잃었던 시기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가 떠났고 곧이어 아버지의 행방까지 묘연해졌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포함한 학창 시절 전체를 할머니(추인순·70)와 단둘이, 그것도 한쪽 다리로만 버텼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축구는 못하지만 두 팔이 멀쩡하니 농구는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친구들과 활발히 어울렸습니다.”
정 주무관의 할머니는 지금의 그를 만든 결정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시장에서 고추를 말려 팔아가며 어렵게 생활비를 마련해 초등학교 때부터 그를 컴퓨터 학원에 보냈다. 다리가 불편한 손자가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컴퓨터활용능력 1급, 워드프로세서 1급, 정보처리기능사, 정보기기운용기능사 등 다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정 주무관은 앉아서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원주 장애인 농구팀 ‘원주드림팀’의 주전 센터다. 그의 활약으로 팀은 지난 2007년에 2부리그에서 우승까지 했다.
“취미로 시작한 농구가 지금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활력소입니다. 코트에서 한바탕 땀 흘리고 나면 제가 가진 장애 따윈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맡고 있는 군수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격증을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할머니와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 그리고 군인정신이 살아 있는 군무원으로서 매 순간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