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하얀 억새 물결이 장관인 포천 명성산

명성산 억새밭./이동혁 칼럼니스트
명성산 억새밭


신라 경문왕의 3대 왕후인 설왕후는 왕자를 낳아줬지만, 다른 왕후의 모함을 받습니다. 꼬임에 넘어간 경문왕이 결국 왕자를 죽이라고 명하자 억울한 설왕후는 아기왕자를 연못에 던지고, 자신은 누각에 올라가 칼을 입에 물고 거꾸로 떨어져 죽습니다.

연못가에 숨어 있던 유모는 떨어지는 아기를 받아 안고 도망갔는데, 그때 아기를 받다가 손가락으로 한쪽 눈을 찌르는 바람에 아기는 애꾸가 됐습니다. 유모의 손에 길러진 아기왕자는 절에서 생활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까마귀가 종이 한 장을 떨어뜨려 놓고 갔는데, 펼쳐보니 거기엔 왕(王)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왕이 될 운명인 줄 알았고, 훗날 후고구려를 건국해 정말로 왕이 됩니다. 그가 바로 궁예입니다.

명성산 억새밭 전경./이동혁 칼럼니스트
명성산 억새밭 전경

궁예는 좋은 왕은 아니었습니다. 사람 목숨을 쉽게 해치는 포악한 성격으로 신하들과 백성의 신망을 잃었고, 결국 오래지 않아 왕위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남은 병사를 이끌고 산으로 도망친 궁예는 근처의 동굴에서 정신 수양을 하다가 그 산에서 피살되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궁예가 들어간 동굴이 있는 산은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 울음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산이 지금의 명성산(鳴聲山)입니다.

명성산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산입니다. 현재는 궁예의 울음 대신 군부대의 포격 훈련 소리가 메아리치곤 합니다. 포격 훈련을 할 때면 민간인은 출입이 통제됩니다.

제가 작년 봄에 명성산을 찾았을 때도 포격 훈련 중이었습니다. 포 소리가 어찌나 큰지 들어가라고 해도 못 갈 것 같았습니다. 포격 훈련은 1년 내내 이뤄지지만, 10월엔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명성산 억새축제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명성산의 억새는 한국 전쟁 당치 울창하던 숲이 사라지면서 자라난 것들입니다. 규모만 약 5만평으로 국내 5대 억새 군락지로 꼽힙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아름다움은 거리에 비례하는 법!. 제가 미리 가봤습니다. 짙어가는 구절초 향기를 맡으며 올라가다 보니 아직은 설익은 단풍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울음터 전경./이동혁 칼럼니스트
울음터 전경

비선폭포를 지나 2단으로 떨어지는 등용폭포를 옆에 두고 삼각봉으로 향하다 보면, 8부 능선 즈음에서 갑자기 하늘이 열리는 곳이 나타납니다. 나무는 거의 없고 사람 키보다 높은 억새가 나타나 장관을 이루는, 그곳이 바로 억새밭입니다.

명성산의 억새 축제는 지난 9일부터 27일까지 열립니다. 건장한 성인 남자의 걸음으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코스입니다.

이곳 주변에는 김일성 별장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 산정호수가 있습니다.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인공호수로, 경치가 매우 독특해서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주말에는 산정호수를 보거나 명성산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매우 붐빕니다. 아침 일찍 가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