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 유족 김석주씨
김석주(金錫柱·67)씨 가족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 6·25 참전 용사인 아버지, 그리고 대학 재학 당시 월남전에 자원 입대한 그에 이르기까지 3대째 한국 현대사를 오롯이 품은 가족이다. 의병대장을 지낸 조부 김형태씨는 1919년 3·1운동 당시 충남 서산군 대호지면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제에 체포, 태형 90대를 맞고 생후 5개월이던 아버지를 남겨두고 숨을 거뒀다. 이후 일가가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란 선친은 군번도 없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후 김씨는 순국선열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김씨는 맹호부대에서 복무하며 67년부터 1년4개월간 월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얻은 고엽제 피해와 전쟁공포증으로 인한 신경쇠약에 오래 시달렸지만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열심이다.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강남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00년부터 독도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독도관광특구 선포식을 열고, 독도를 지키는 장병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다.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회원들과 매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한다. 1980년부터는 강남구 내 범죄취약지대를 주 1회 야간순찰하고, 노인정을 방문해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간의 공로로 1972년 화랑무공, 2010년 국가보훈처장 표창을 받았다.
상이군경회관에 재활치료실까지 만들어 복지 노력
전상군경 노번웅씨
월남전 참전용사 노번웅(盧繁雄ㆍ71)씨는 군 복무 중 다리가 절단되는 신체적 장애를 입었지만 역경을 딛고 성실한 사회생활을 해온 참 군인의 표상이다.
1964년 2월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군사학교 교육을 받고 다음해인 1965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노씨는 월남전에 파견된 1966년 백마 1호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1967년 군 작전 수행 중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제대하는 불운을 겪었다.
장애인이라는 불편과 곱지 않은 세간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노씨는 1969년부터 29년 간 한국산업은행에서 근무하며 모범적인 직장생활을 하며 우리나라 산업발전과 경제부흥에 힘썼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서울시 송파구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노씨는 보훈단체 활성화와 회원들의 복지증진에 힘써왔다. 특히 자신과 같이 신체가 불편한 회원들이 주차 때마다 겪는 문제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는 송파구청과 협의해 도로경계석을 세워 장애인용 보철차량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등 회원 편의를 증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2007년 관내 상이군경회관 1층에 재활치료실을 설치, 평소 몸이 불편한 회원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회원들의 만족도를 높인 공로도 인정받았다.
노씨는 그간의 공로로 국무총리표창(1981년), 대통령표창(1988년), 노동부장관표창(1996년) 등을 받았다.
자비 털어 이웃 돕고 현충원 지킴이 활동도 10년째
전몰군경 유족 유승진씨
유승진(柳承鎭ㆍ64)씨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1951년 12월 전사한 아버지 유계형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무치게 그리워도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아버지의 산화로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어린 두 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모진 세월을 견뎌왔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남은 가족의 서러움, 지독한 가난 등 어린 소녀 유씨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일평생 "아버지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긍지로 반듯한 삶을 살아왔다.
아버지의 희생정신을 이어받은 그는 2002년부터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서울시지부 서초구지회장에 임명돼 활약했다. 독거고령회원과 자매결연 맺기 사업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어려운 회원들을 발굴, 자비로 쌀을 구입해 전달하는 등 이웃사랑 실천에 앞장섰다. 현재까지 80회 이상 자비를 털어 이들을 후원했다. 또 회원성금 8,000만원을 모아 불우회원들의 주거지를 마련해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2008년에는 6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회원 50여명과 태안반도 기름제거 복구 운동에 동참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거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넋들의 아픔을 돌보고 싶은 마음으로 10년째 현충원 무연고 묘역 주변을 정돈하며 현충원 지킴이 활동을 벌여왔다. 2002년 7월부터 총 160회에 걸쳐 서울보훈병원 방문 봉사활동도 하며 보훈병원 진료 편의 증진을 위해 힘써왔다.
상이군경 자녀 장학제도 마련… 처우 개선 앞장
무공수훈자 박용종씨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태어나 '튼튼한 안보관이 나라를 지키는 힘'이라 생각했던 박용종(朴龍鐘ㆍ82)씨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 해 8월 육군종합학교를 통해 입대했다. 그는 포천, 철원 등 최전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중공군의 총탄이 우측 대퇴부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에도 불구하고 치료 후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 활약한 공로로 1951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휴전 후에는 공비토벌작전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1960년 제 1야전군 사령부 직할 제16대대장을 끝으로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소위로 임관한 후에도 그는 국가에 봉사하는 삶을 이어갔다. 1960년 국가고등전형에 합격해 국가보훈업무를 담당하며 전사자 유족이나 상이군경에 대한 열악한 처우 개선에 앞장섰다. 상이군경 자녀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제도 마련에도 힘썼다. 1969년 교통공무원으로 복잡하고 중복된 행정체계를 개선시킨 공로로 1970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1993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보훈단체 회원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2006년 2월 무공수훈자회 서대문지회장이 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회원들을 위해 유관기관의 협조를 이끌어내 6년간 121명에게 875만원, 135명에게 20㎏짜리 쌀 135포대를 지원했다. 현재도 지회장으로 활동하며 국가안보를 위한 행사에 적극 참여해 애국관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태극기 달아 주기·거리질서 확립 운동 등 이끌어
무공수훈자 박원빈씨
일제강점기인 1933년 태어난 박원빈(朴元彬ㆍ79)씨는 '조국을 위한 군인정신과 헌신'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3개월이 지난 1950년 9월 7일 박씨는 17세 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 군인정신으로 포화 속을 누볐다. 월남전에도 참전한 박씨는 1977년 7월 퇴역까지 26년 간 나라에 헌신한 군인이다.
대령으로 예편한 박씨는 국가 안보와 군인들의 보훈에도 늘 관심을 기울였다. 박씨는 6·25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와 동료들의 영령을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고 매년 현충일에 현충원에 안장된 전우 하나하나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매년 8월 중순이면 나라사랑 태극기선양행사를 갖고 자신의 거주지역인 동대문구 관내 4개 지역에 태극기 달아주기 운동을 벌인다. 태극기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내용의 유인물도 배부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06년부터 무공수훈자회 동대문구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동대문구 안보단체 협의회를 구성해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태극기 선양운동, 거리질서 확립운동 등을 벌여왔다. 박씨는 그간의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과 모범포상을 받은 바 있다.
역경 딛고 일어나 봉사의 삶 살아 온 이들에게 박수를 지난달 25일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국군전사자 유해 12구가 6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국가를 위한 희생자들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에 대한 대우는 높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참전용사를 예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곤 한다. 한국일보사가 1974년 창간 20주년 기념 사업으로 제정해 올해로 39회째를 맞은 '서울보훈대상'이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이번 서울보훈대상 후보로 추천된 이들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희생하거나 가족을 잃는 등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역경을 겪었다. 상처를 극복하기도 벅찬 삶이었을 텐데, 하나같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하고 헌신했다.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이번 심사에는 특히 기존의 국가유공자 외에 5·18민주유공자, 월남참전유공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 특수임무수행자 등도 대상으로 추가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묵묵히 봉사한 분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분을 우선 선발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산하에서 스러져간 호국 영령들이 넋을 기리며,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존경과 예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