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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 일기 - 이건휘 훈련병 육군 6사단 신병교육대

 

스물셋의 나이에 입대한 나는 두어 살은 족히 어린 다른 동기들에 비해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고 신교대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사회 생활과 그 달콤한 자유를 향한 미련….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단절 따위는 차치하고라도 한창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그려야 할 시기에 입대해 남들보다 한참 뒤처지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 너무도 컸다. 아니나 다를까. 군대라는 조직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녹록지 않은 시험의 장이었다.

그간 타고난 ‘저질 체력’이니 학업 등을 핑계로 운동을 미뤄 온 덕에 몸을 써야 하는 일에는 동기들보다 뒤처졌고, 수많은 규칙과 규율, 그리고 꽉 끼는 청바지처럼 짜인 일주일간의 일과는 쉽사리 적응하기 어려운 전혀 새로운 분위기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좌절 속에서 1주차 훈련을 마치고 뜻하지 않은 전환점이 찾아왔다. 대학 시절의 절친이 보내온 한 통의 편지, 그리고 그 속에 동봉된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가슴속에 와 닿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픈 날을 참고 견디라 /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현재는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군 생활을 하며 벽에 부딪힐 때마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홀로 되뇌고 곱씹으며 위안을 얻었다는 이 시를 내게 선물한 친구는 나 역시도 참고 견디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건강한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성공적으로 복무를 마칠 수 있으리라는 위로의 한 마디를 내게 건넨 것이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지나간 1주차 훈련소 생활을 차분히 돌아보게 됐다. 파노라마 영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 속에서 나는 자신감을 잃고 좌절하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단 한 번의 훈련이나 사소한 활동 하나까지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나 자신을 한계점, 혹은 그 이상으로 밀어붙이면서 완주해 낸 나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하며 마음을 다잡는 내가 보였다. 또 이미 너무도 소중해진 나의 생활관 동기들과 아침 기상부터 저녁 취침까지 하루의 모든 일과를 함께하고 동고동락하며 환히 웃는, 그 속에서 서서히 군 생활의 진짜 의미와 그 재미를 깨닫기 시작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나는 해낼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 군대라는 환경은 내게 고난과 역경을 주는 하나의 시련이 아닌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새로운 내 자아를 찾게 도와줄 인생의 전환점이자 내 한계와 단점들을 그저 회피하는 대신 이를 악물고 정면돌파해 더욱 단단하고 강해진 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제2의 출발선이다.

내가 가끔은 지쳐 쓰러지더라도 이 시를 차분히 곱씹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이겨내고야 말 것이다. 소중한 나의 젊음, 그리고 군 생활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