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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무너진 '호국의 다리'

6.25전쟁의 상징물인 '호국의 다리'(구 왜관철교)가 6.25전쟁이 일어난 25일 새벽 붕괴됐다.

'호국의 다리'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이 최후의 저지선으로 정해지면서 북한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엔군에 의해 철교가 폭파되면서 무너진 이후 이번 장마로 6.25 전쟁이 일어난 이날 두번째로 붕괴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있다.

◈ 호국의 다리 명칭유래

 


경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약목면 관호리에 연결되는 호국의 다리는 경부선의 개통(1905)과 더불어 단선 철교인 낙동강대교(洛東江大橋)로 출발해 경부선의 복선화와 함께 새로이 왜관철교가 가설됨에 따라 구철교(舊鐵橋)는 1941년 이후 도로 교량 또는 인도교(人道橋)로 바뀌었다.

6·25전쟁 때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교량은 폭파됐으며, 1993년 다리가 복구되자 국토 수호의 낙동강 전투를 기리기 위해 '호국의 다리'라고 부르게 됐다.

길이 469m, 총 폭 4.5m의 단선 철교로 한강철교와 같은 철골 트러스 방식으로 건축됐다.

◈ 6.25전쟁과 호국의 다리

6·25전쟁이 발발하자 낙동강이 최후의 저지선으로 정해지자 북한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철교의 폭파가 불가피했다.

8월 3일 호국의 다리는 유엔군에 의해 폭파됐고 1953년 휴전 후 폭파된 구간을 목교(木橋)로 연결해 지금의 인도교로 이용되고 있다.

1970년에는 국도 4호선의 교량으로서 왜관교가 가설됐다.인도교는 노후화로 1979년 이후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됐고 1993년 목교 구간을 철교로 복구한 후 보행 전용도로로 개통하고 이후 호국의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1차로(4.5m)의 인도교이며 처음에는 경부선의 철도 교량이었으나, 나중에 국도4호선의 도로 교량으로 이용되다가 최근에는 보행전용으로 바뀌었다.교량에 아치형의 난간이 없는 부분이 바로 6·25전쟁 때 폭파된 곳으로 전쟁의 상처를 말해주고 있다.

2008년 10월에 '칠곡왜관철교'로 등록문화재 제406호가 됐으며, 칠곡군은 일대에 30만㎡ 규모의 평화공원을 조성해 '호국의 메카'로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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