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는 6350여명의 여군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장교는 2500여명에 달하고 여군의 역할과 위상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송 준장도 자신의 장군 진급에 대해 ‘여군 6000여 명의 노력과 역량이 높이 평가된 결과’로 여기고 있다.
1981년 임관해 29년차인 송 준장은 여군들이 국내외 민사작전 등에서 특히 많은 성과를 일궈낸 것으로 평가했다. 송 준장은 “현대의 전투는 옛날처럼 보병이 고지에 깃발을 꽂는 것이 목표도 아니고, 전투 자체보다는 전쟁의 승리가 중요하다”며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보듯 전투 후 지역을 안정시키는 민군작전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여기서 여성이 많은 몫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군 학사장교 등 최근 확대되는 여성의 군 진출에 대해서도 “남성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면 여성은 전투의 승리를 전쟁의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미군에서도 여성 인력이 많아졌고, 우리 여군도 한반도뿐 아니라 해외에서 많은 역할이 가능하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송 준장은 현재 합참 정보본부의 해외정보차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무관들을 관리하는 업무다. 영어에 능통한 그에게 적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송 준장도 복무 30년 동안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점은 있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임무와 ‘가사 분담의 균형을 맞추는 것’과 ‘자녀 양육’을 꼽았다. 다른 여성 직업인과 달리 군 조직 특성상 많은 지역을 돌아다녀야 했던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집에 놔두고 비상대기를 해야 할 때는 막막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그는 “이제 여군도 모성보호와 관련해 국방부 여성정책과에서 많이 개선하고 있고 사회보장과 연계해서 더 나은 제도로 정착되도록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 준장은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무관연락장교로 근무할 때 육군 의장대 소대장이었던 남편과 1985년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두고 있다. 외아들의 이름은 ‘해병’에서 딴 ‘마린’이다. 아들은 군복무를 해병에서 하겠다는 각오다.
남편은 육군 항공병과 중령으로 전역을 앞두고 있다. 송 준장은 “남편은 하늘보다 높은 것이 지아비라고 늘 주장하기 때문에 군복을 같이 입고는 만나지 않는다”며 “젊었을 때는 외조를 잘 안 했지만 중령을 같이 달았을 때는 저희가 경쟁력이 남자들보다는 약하니까 그때부터는 외조를 잘 해주더라”고 자랑했다.
송 준장은 대구 경북여고와 영남대 정치외교학과(76학번)를 졸업했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이 여고 동기생이다. 송 준장은 2006년 첫 별을 단 육사 37기 출신과 임관 시기가 같다. 1981년 여군에 지원했으며 90년 여군병과가 해체되면서 여군에게 모든 병과가 개방되자 보병으로 전과했다.
군에서 송 준장은 미국 국방언어학교 영어교관과정을 수료했고 임관후 연락장교·의전장교·작전장교 등을 거쳤다. 또 지상군페스티벌 종합사령실 대변인, 특전사 여군대장, 육군 여군대대장, 육군 제2훈련소 연대장, 제2작전사령부 민심과장, 한미연합사령부 민군작전처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하며 여군으로선 많지 않은 작전통으로 꼽혀왔다.
그는 여군의 장점으로 의무가 아닌 지원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각오가 남다르다는 점을 꼽았다. 이같은 여군 인력을 최적의 장소에 배치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남군과의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때 송 준장의 상관이었던 ㅎ 예비역 대령(육사34기)은 “뛰어난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남성 장교들을 거침없이 휘어잡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장군감으로 꼽았다”며 “송 준장은 여군 후배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