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 인생 조력자' 되어 강군 육성 앞장
훈육관과 부사관 초급교육생의 멘토-멘티로 만나 이제는 함께 훈련부사관의 길을 걷는 육군부사관학교 이정원(왼쪽) 중사 |
나의 말과 행동이 내가 가르치는 이들의 인생에 작으나마 전환점을 만들어 줬으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장소를 초월해 누구나 이런 소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소망과 달리 실제 이런 보람을 맛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
이런 가운데 육군부사관학교에서 훈련부사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정원(33) 중사는 쉽게 느끼기 힘든 가르침의 기쁨을 최근 누렸다.
11-1기 훈련부사관 교육생으로 부사관학교에 입교한 육군훈련소 황경호(31) 중사가 그를 찾아 “이 중사님 덕분에 훈련부사관의 길을 택하게 됐다”고 고백한 것.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변화가 생겨난 것일까.
두 사람의 인연은 2004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중사는 훈육관으로 부사관학교에 전입 와 초급교육 중인 부사관을 훈육했는데 그 속에 황 중사가 있었다.
“제가 훈육한 첫 기수가 황 중사입니다. 이후 7년여 동안 많은 부사관을 교육·훈육했지만 첫 기수라 생각이 많이 나고 아쉬움도 많았지요. 너무 열정을 쏟아 훈육에 매진하다 보니 총검술 시간에 서서 졸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황 중사에게 그해 겨울은 혹독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부사관의 길에 들어선 데다 이미 결혼해 자녀까지 있는 상황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며 힘든 훈련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그에게 이 중사는 군문으로 가는 길을 밝혀줬다. 누가 뭐라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멘토-멘티의 관계가 형성된 것.
“엄할 때는 정말 엄하셨지만 따뜻하고 재미있게 제 마음을 다독여주실 때가 더 많았죠. 가족이나 장래 문제로 힘들 때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요. 당시에는 가족과 연락이 힘들었는데 저를 대신해 안부를 전해 주셨을 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마웠지요.”
물론 언제나 모범을 보였던 이 중사의 외적·내적 자세도 황 중사에게 큰 감동을 줬다.
“언제 어디서나 반듯하고 정도를 지키시는 모습에 반했어요. 이 중사님을 보면서 힘들지만 명예로운 훈련부사관의 길을 다시 눈여겨보게 됐고 나도 훈련부사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중사는 “훈련부사관의 길을 선택한 큰 이유가 훈육관이었던 제 영향 때문이었다는 말을 듣고 고마움 반, 부끄러움 반”이라면서 “올 초에는 황 중사의 동생인 황영식 하사가 또다시 제게 훈육을 받고 임관했는데 두 사람 모두 부대에서 꼭 필요한 부사관이 되길 기원한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훈련부사관반 교육을 마치고 현재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지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황 중사는 “이 중사님처럼 훈련병들을 잘 보살펴 강군 육성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훈련부사관이란
육군훈련소와 사단 신병교육대대, 부사관학교, 특전교육단 등에서 신병 교육 및 부사관 양성교육을 전담하는 전문 교관·훈육관을 말한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신병ㆍ부사관후보생들의 일과를 통제하고 병영생활을 밀착 지도하는 담임교사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군인 만들기의 조련사’ ‘개인교사(멘토)’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교육훈련시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말과 행동에 모범을 보여야 하고 교육생을 24시간 밀착 관리하며 훈육까지 담당해야 하는 만큼 업무 강도가 세다. 육군은 교육훈련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부사관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 강군 육성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2000년 훈련부사관반을 창설했다. 지금까지 배출한 훈련부사관은 1500여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