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면 생계 걱정',취업난 시달리는 제대군인
#1. 지난해 육군 대위로 전역한 A씨. 새벽부터 도시락을 들고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전역 후 여러 곳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계약직 몇 군데서 연락 온 것이 전부다. 지금은 취업을 위해 군무원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A씨는 중학생인 두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으로 몇 달 일했지만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는 생활비 충당도 쉽지 않았다.
#2. 2013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한 B씨는 지인의 사업을 도와 울타리 판매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이 일정치 않아 매달 150여만원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대학생인 두 자녀의 학비를 생각하면 앞날이 막막하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전역한 직업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아픔이 있다. 바로 ‘재취업’이다.
30년 이상 복무한 사람을 제외하면 연금으로는 자녀의 학비와 가족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제대군인들은 재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박람회장을 드나들며 구직 정보를 얻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한 탓에 민간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해 일용직을 전전하고, 창업을 했다 실패해 파산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 사회 격리된 軍 특성이 원인, 취업률 57.4% 불과
제대군인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군 복무의 특수성이 지목된다.
공무원과 달리 군인은 계급정년 제도에 의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위는 43세, 소령은 45세, 중·상사는 50대 중반 이전에 전역한다.
이들은 전역 전까지 사단급 이하 야전부대의 참모와 지휘관 등으로 복무한다. 격오지에서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다 보니 취업 역량 개발이나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전역한다. 군 경력과 경험만으로는 민간기업 취업이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 제대군인은 “제대하고 며칠 지나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환승하는 방법을 몰라 한참을 해멨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20년 넘게 군 생활을 하고 전역했는데, 지하철 타는 방법도 모르나 싶어 허탈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사회와의 단절 때문에 2009~2013년까지 4년 동안 육군의 중·장기 복무자 취업률은 57.4%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2명 중 1명은 전역하면 생계가 막막해 진다는 뜻이다.
그나마 취업한 경우에도 대부분은 경비·아파트 관리 등 용역업체의 통제를 받는 현장근무를 하고 있다. 계약직·노무직 등 열악한 여건 속에서 월 100∼200만원의 보수로 자녀교육과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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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들에게 훈련내용을 설명하는 교관들. 육군은 예비군 교관 직위에 제대군인들을 적극 기용하고 있다. |
반면 선진국들은 제대군인의 취업이 양과 질 모두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미국은 5~10%의 가산점을 부여해 취업에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도 국가나 공공기업에 10~16%의 법정 의무고용률을 적용해 취업을 보장하고 전역 2년 전부터 취업설계를 지원한다. 제대군인을 채용하는 민간기업에는 초기 임금의 50%를 지원하는 등 법적·제도적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제대군인의 90% 이상이 취업을 보장받는다.
이를 통해 직업군인 시절에는 군 복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전역 후에는 국가가 책임지고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선진국의 제대군인 취업률은 미국 94%, 영국 95%, 프랑스 94%, 독일 92%, 일본 97%에 달한다.
◆ 육군 “2020년까지 일자리 4만개 창출”
육군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청·장년 시기를 국가에 헌신한 이들이 전역 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라는 국정과제와 연계해 2020년까지 4만개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육군은 제대군인들의 안정된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교관, 평가관, 군무원 등 군내 직위와 비상안전기획관, 군사학과 교수, 학교 보안관 등 군 전문성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공공부문에 취업을 지원해왔다. 이와 함께 기업에는 군 경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여 취업을 지원해왔다.
박춘상(준장) 육군 제대군인지원처장은 “앞으로도 제대군인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군내 분야는 국방개혁과 연계해 민간용역으로 전환 시 제대군인 채용을 늘리고, 비상대비업무담당자 확대, 재난안전담당관 운용 의무화 등을 추진해 2020년까지 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사회적 인식 전환·국가적 지원 절실
육군의 ‘4만개 일자리 창출’ 계획이 실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제대군인의 취업 지원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과 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수라는 지적이 많다.
한 전직전문가는 “군 차원에서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적극 발굴해 지원하지 않으면 제대군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직위는 비정규직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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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1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 리셉션홀에서 열린 2012 제대군인 취,창업 한마당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 보고 있다. |
‘제대군인은 기업에서 일을 못한다’ ‘취업난이 심각한데 제대군인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사회 일각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춘상(준장) 육군 제대군인지원처장은 “사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군 복무에만 전념한 군인들이 기술 측면에서 일반인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면서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충성심과 희생정신, 조직을 관리하고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리더십과 위기 대처 능력은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평가를 기업들로부터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에서는 제대군인에 대한 예우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못하다”며 “현역시절에는 힘들어도 전역 후에는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는 희망이 있어야 우수 인력들이 군인의 길을 택할 것이고, 이것은 튼튼한 국가안보의 초석이 되어 국력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제대군인들의 취업지원이 국가적 책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