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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전우회 명예회장/예비역 대령 김상덕

육군5군단전우회 2012. 6. 2. 21:28

충심으로 사수한 한강방어선 “7일간의 기적”


한반도 적화통일을 막아낸 1등공신

백골전우회 명예회장/예비역 대령 김상덕

 

 

일본 제국의 연합함대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구 제정러시아의 발트함대를 지휘하는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과 대한해협에서 마주쳤다. 그는 국운을 건 전투에 임하기에 앞서 “우리 함대가 패퇴하면 일본 제국의 미래는 없다. 각 함의 장병들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라”는 간결하고 비장한 명령을 내렸다. 김상덕 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한강을 사수하던 자신의 각오를 회상하며 위의 일화를 인용했다. 자신이 물러서면 북한군에게 한강을 빼앗기고, 그것은 곧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의미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포화 속으로 몸을 던진 젊은 군인. 이런 젊은 군인들의 선혈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백골전우회의 명예회장인 김상덕 대령을 만나 긴박했던 전쟁의 기억에 대해 들어봤다.

 

적에게는 공포, 아군에게는 신뢰의 이름 ‘백골부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을 도륙하며 강한 이미지로 부각된 부대가 있다. ‘백골’이라는 스산한 이름으로 상징되는 이 부대는 현재는 3사단을 가리키는데, 그 뿌리는 한국전쟁 당시 수도 사단 예하의 18연대이다. 당시 백골부대는 서북청년단 출신들을 주축으로 개전 이후 수도 8연대와 7사단 3연대가 백골부대로 편입되어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됐다.

북진 당시까지만 해도 백골부대는 수도 사단 소속이었으나 흥남철수 당시 3사단 26연대와 소속이 교체되며 백골부대는 3사단 예하로 편성됐다. 이에 3사단 18연대 1대대는 ‘진진백골부대’, 18연대는 ‘진백골부대’, 3사단을 ‘백골부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즉 김상덕 대령은 백골부대의 중핵인 18연대 1대대, ‘진진백골부대’에서 실질적인 야전지휘관인 중대장으로 복무하며 한국전쟁의 한 복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힘겨운 싸움을 경험한 것이다.

강성한 전투력을 인정받아 전쟁 중 항상 선봉에 섰던 백골부대는 국군 1사단, 6사단과 함께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부대로 알려져 있다. 김상덕 대령은 “전쟁 초기에 북한군이 서울 외곽을 돌파해 한강을 위협했다. 당시 나와 3중대원은 한강변에 하반신을 파묻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싸웠다”며 당시 방어 작전을 회고했다. M1소총 한 자루로 수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도강을 저지하고 수많은 병력과 장비를 격퇴하며 1주일간 방어에 성공한 당시의 작전은 전사 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탁월한 성과를 자랑한다.

김 대령은 “정말이지 물러서면 조국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했었다. 한명의 적이라도 더 사살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했다. 가진 것이라곤 소총, 57mm대전차포와 정신력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상 당시 국군의 장비는 북한군의 MBT인 T-34를 격파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적의 전차를 막아낸 것이었다.

물론 그에게 승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안양천에서의 전투는 그가 생생히 기억하는 비극 중 하나다. 탄탄한 안양천 제방 뒤에 엄폐한 적군에게 기습을 당해 상당수의 중대원을 잃고 자신도 총상을 입은 것. 하지만 큰 부상도 그를 막지 못했으니, 부상에서 회복되자 주저없이 백골부대로 복귀해 제 3중대장으로 함경북도 극동까지 진출하는 빛나는 전과를 달성한다. 김 대령은 바로 이곳에서 극복할 수 없는 여섯 번째 부상을 당해 전선에서 물러나 후방 근무를 하게 된다.

 

전설이 된 영웅 · 전장의 불사신

여섯 번의 부상을 당하며 열두 개의 파편을 안고 살아가는 노병의 기억은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사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쟁 와중에 혁명세력에 의해 급속히 적화돼가는 남한 국민들을 목격하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각오로 후퇴하는 국군부대 사이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 위대한 군인임에 틀림없다. 세계가 인정하던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위용을 망원경으로 훑으며 일본 연합함대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도 그와 같은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수많은 부상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병약한 모습일지라도 눈빛만큼은 젊은 시절의 예기가 살아있는 김상덕 대령과 같은 국군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를 영위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