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학도병, 62년만에 대통령 경례 받다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조국의 품에 안겼다. 전사한 지 62년 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 인근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공군 C-130 수송기 편으로 미국 하와이를 출발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며 “북한지역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25일 말했다
<공항 나가 영접하는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 등이 25일 북한지역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를 실은 공군 C-130 수송기가 미국 하와이를 출발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거수경례를 하며 영접하고 있다.
○누구이고 송환과정은
전사자 유해 12구는 6·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다. 미국이 2000년부터 2004년 사이 장진호 주변 지역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약 50년간 북한지역의 골짜기에 외롭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미군 유해를 찾아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하와이에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를 두고 있다. JPAC는 장진호 지역에서 수습한 유해를 약 10년간에 걸친 유골 치아형태 감식, DNA(유전자) 검사 등 과정에서 한국군을 구분했다. 지난해 8월 JPAC는 우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이 사실을 통보했고, 이때부터 공조체제가 가동됐다. 국방부는 이미 전국에서 확보된 전사자 유해 확인을 위한 유가족 DNA 표본과 대조작업에 나섰고, 김용수·이갑수 일병의 신원을 확인했다.
김·이 일병은 미 7사단 15전차대대 소속이었다. 1933년 부산에서 출생한 김 일병은 18세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 미 7사단에 배속돼 북진하다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191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이 일병은 34세의 늦은 나이에 아내와 여덟 살, 네 살 어린 두 남매를 뒤로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지역 전투에서 전사했다.
○눈물로 맞은 유해
서울공항에서 열린 봉환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 등은 최상의 예우를 갖춰 유해를 맞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통령이 거수 경례를 하자 애국가가 연주되고 21발의 조포가 발사됐다. 태극기와 국방부기, 유엔기 등으로 구성된 기수단이 트랩을 내려온 유해를 향해 일제히 깃발을 숙였다. 부대기가 개인에게 허리를 굽히는 것은 최상의 예를 표시하는 행위이다. 신원이 확인된 김·이 일병은 내달 중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고 나머지 10구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서울현충원 유해봉안소에 안치된다.
이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은 끝까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북한지역과 비무장지대(DMZ) 등에 국군 전사자 유해 3만~4만여구가 묻혀 있을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하고 있다.
▶ 장진호 전투
미군과 중공군은 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호 인근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중공군 12만명에 포위 된 미 해병 1사단 1만2000여명은 탈출 과정에서 전사자 2500명, 부상자 5000명을 냈다. 당시 뉴스위크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