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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 비밀병기 변이중 화차, 420년 만에 부활

육군5군단전우회 2011. 11. 23. 20:34

 

망암선생 서거 400주년 기념사업 일환
28일 육군포병학교 훈련장에서 시연회

 망암 변이중 선생이 제작해 행주대첩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화차가 420년만에 복원돼 첫 시연회를 갖는다.

장성군은 "오는 28일 오전 10시30분 장성 동화면 육군포병학교 훈련장에서 김양수 장성군수를 비롯, 유관기관 단체장과 포병학교 군인, 문중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복원화차 발사시연회를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봉암서원에서는 망암선생 서거 4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망암화차 복원계획을 세워 전남도와 장성군의 지원으로 전쟁기념관 박재광 박사 등 고(古) 무기 전문가들의 자문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화차를 복원했다.

지난 10월 중순에 복원된 망암화차는 국방연구소와 육군기계화학교 진원사격장에서 최장 300m의 목표물에 정확히 적중하는 실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화차의 정면에 장착된 14개의 승자총통은 화약심지로 연결돼 3초 간격으로 발사되며 승자총통 한 개에서 발사된 탄환은 15알로 40초동안 210여 알의 탄환이 발사된다.

변온섭 이사장은 "420여 년만에 고증에 의해 복원·제작된 화차의 실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행주대첩에서 선생이 세운 공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확인했다"며 "우리나라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후세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망암 변이중 선생은 1546년 장성군 장성읍 장안리에서 태어나 23세 때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 생원이 됐고, 28세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이후 사헌부 감찰, 공조좌랑, 성균관 전적, 황해도 도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선조의 특명으로 전라도 소모사(召募使)가 돼 화차를 발명, 화차 300량과 총통 등을 제작한 이후 전라감사 권율의 요청을 받아 화차 40량을 줘 행주대첩의 쾌거를 올리게 했다. 망암선생이 별세한 뒤 봉암서원이 세워졌고,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을 주향으로 모신 행주서원에 배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