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가족 취업·창업 도와드려요”
아줌마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반란의 근원지는 인구라야 4만5천여명이 고작인데다, 그나마 군사시설이 98%를 차지하고 있는 연천군이다. 사방이 군부대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용한 동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군부대 관계자뿐만 아니라 군인 남편들이 더 좋아한다고 하는 반란의 현장을 직접 가봤다.
지난 10월 12일 오전 11시 연천군 여성회관. 임산부부터 20대 젊은 엄마, 그리고 40대 중년여성들까지 모둠별로 앉아 그림 그리기가 한창이었다. 마치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악어 그림을 그리는 아줌마, 입이 큰 물고기를 그리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아줌마,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대체 뭘 그린 건지 알 수 없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아줌마 등. 아직 미숙한 솜씨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즐거워하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군인의 아내라는 것. 이들은 경기북부청이 군인가족 취업을 위해 지난 3월부터 경기도 최초로 실시하고 있는 ‘2011 군인가족 맞춤형 자격증취득과정’ 프로그램 가운데 미술심리지도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산업기반이 취약한 군사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어도 교통 때문에, 교육기관이 없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취업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군인 가족들의 욕구와 학구열에 부응한 경기북부청 맞춤형 교육의 반응은 뜨거웠다. 또 교육에 참가하게 된 사연도 각지각색,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 역시 남달랐다.
다섯 살짜리 아들과 두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김 현(35·여)씨.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그녀는 군인 남편따라 연천으로 이사와 맞벌이를 했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지난 9월 초 회사를 그만둔 후 바로 6군단(연천) 군인가족을 대상으로 한 미술심리지도사 과정에 참여했다는데 수업 후 가족과의 대화시간이 많아졌다고 자랑한다.
“남편이 최전방에 근무하다보니 평소 대화가 없었고 아이들에게도 일방적으로 소리를 많이 지르는 엄마였는데 공부를 하면서 나를 되돌아 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가족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어요. 미술심리치료를 통해 내가 변하니깐 가족이 변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데 아이들도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고 해요.”
교육현장에서 만난 결혼 3년차 황금의(30·여)씨는 신혼 초 연천생활이 녹록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아직 아이가 없는 황씨는 수업 후 친구도 사귀면서 각종 지역 정보도 교류하고 삶 자체가 달라졌다고 했다.
“농촌이다 보니 친구도 없고 특히 지역 특성상 관련 일을 찾기 어려웠으니 말이죠. 서울 봉천동에 있는 아동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는데 출퇴근시간만 5~6시간씩 걸렸어요. 농촌으로 시집와 고생많았죠. 농촌이다 보니 뭔가 배우려고 해도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은 정말 재미있고 개인적으로 복지관을 운영하는 게 꿈인데 이번 교육이 향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연천군 청소년수련관·백의초등학교 멘토링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주부 최시몬(32·여)씨는 교육 후 달라진 점으로 ‘전문성 강화’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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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살·일곱살, 두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지만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아이와 불우아동들의 엄마 역할을 하는데 있어 아동심리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전문 미술치료사 강사님의 수업이 현장에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연천은 도시처럼 육아·양육관련 프로그램이나 경력단절 여성들이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사실인데 앞으로 지역 정서를 반영한 평생학습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이밖에도 미술심리지도사 양성 과정 교육 프로그램이 연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타고 1시간 넘게 달려온 열혈주부에서부터 태교와 향후 양육에 활용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 임신 8개월의 예비엄마까지 교육생들은 한결같이 “프로그램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3시간 동안 계속된 수업이 끝나고 마침내 점심시간. 이날 점심은 5사단측에서 교육생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교육생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안았다.
심창섭 대령(5사단 부사단장)은 “연천에 살면서 살림과 육아 때문에 자기계발이나 취업관련 경력관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지역 정서를 100% 반영한 맞춤 프로그램이다 보니 군인 가족들의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보육교사나 사회복지사 등 중장기 프로그램이 개설돼 연천 지역 내 군인 가족들이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경기북부청의 군인가족 맞춤형 자격증 취득과정 프로그램은 사전에 철저한 수요조사를 통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선정하고 여기에 관련 분야 전문강사를 영입해 양질의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군인 가족들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북부청은 6군단 연천지역뿐만 아니라 1군단(고양)에서는 ‘보육교사 양성과정’이 지난 3월 22일 개설돼 현재 22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또 5군단(포천)의 경우 ‘방과후아동지도사 과정’이 지난 5월 3일 개설돼 3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고순자 경기도 복지여성실장은 “처음 시도한 사업인 만큼 성공여부를 떠나 과연 군인 가족들의 호응도가 얼마나 될까 걱정도 했지만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을 만큼 교육과정의 인기가 높고 군부대에서도 지속적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고 하니 일단 사업이 순항 중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며 “교육 수료 후 자격증 취득과정을 활용한 군부대 및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네크워크를 마련하고 군인가족들의 경제적 여건 향상과 자기계발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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