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멘토멘티육군1포병여단 구룡포대대 윤판원(중령) 대대장, 성규현 부사관 후보생
육군1포병여단 윤판원 구룡포대대장이 주례를 선 성규현 부사관 후보생의 결혼식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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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1포병여단 윤판원 구룡포대대장과 성규현 부사관 후보생이 지난 6월 12일 성 후보생의 |
“대대장님은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제 인생의 조언자(멘토), 은인이십니다. 대대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 인생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싫을 정돕니다. 평생 아버지로 생각하면서 감사해할 겁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힘든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는 군 복무. 하지만 성규현(25) 부사관 후보생에게 군 복무는 ‘로또 당첨’과 다를 바 없는 행운이었다.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1년 남짓한 성 후보생의 군 생활 얘기를 들어보면 ‘로또 맞네’라고 공감할 것이다. 군대는 그에게 ‘가정’과 ‘직업’, 그리고 ‘고교 졸업장’까지 선물했기 때문이다.
▶군에서 딴 고교 졸업장
입대 전 성 후보생의 인생은 마구 엉킨 실타래 같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데다 의지할 친척도 없던 성 후보생은 고등학교 학업도 포기한 채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삶을 이어가는 힘든 상황이었다. 거기다 군 입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기에 여자친구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알려왔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
성 후보생보다 7살 연상인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불같이 화를 내신 것은 당연한 일.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가진 것이라곤 맨주먹밖에 없는 성 후보생과의 만남을 극력 반대하시는 상황에서 여자친구는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미혼모 보호시설로 들어갔고 그는 군복을 입게 됐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아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성 후보생은 그때를 회상했다.
이처럼 방황하는 성 후보생의 마음을 윤판원(중령) 구룡포대대장이 잡아줬다. 사실 갓 전입온 신병에게 대대장은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존재. 하지만 윤 대대장은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성 후보생을 불러 면담하며 어떻게 군 생활하는 것이 좋을지 함께 고민했다.
“대대장으로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고 개인적인 문제도 갖고 있는 병사들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정한 상태인 성 후보생을 어떻게 대해 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편하게 군 생활하도록 해주는 것보다 많은 관심을 바탕으로 올바른 길을 선명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100일 휴가 직전 성 후보생의 딸이 태어나자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축하금을 쥐어주고 부내 소속 부사관 차량을 내 아기와 산모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을 시작으로 윤 대대장은 본격적으로 멘토링을 시작했다.
“대대장님께서 ‘앞으로 가족과 잘 살려면 안정된 직장이 최우선이다. 네게 부사관만큼 좋은 직업은 없다, 그렇지만 중졸 학력이어서 지원 자격이 없으니 고졸 학력을 갖기 위해 검정고시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도 틀린 말씀이 아니시지만 책을 놓은 지 너무 오래돼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단 목표를 제시한 윤 대대장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생 지도 경험이 있는 병사 2명을 전담 교사로 지정해 ‘족집게 수업’을 하도록 하고 최대한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배려했다. 윤 대대장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지도하던 병사들이 “너무 기초가 부족해 짧은 시간 내 합격하기 힘들다”고 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본인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조마조마한 가운데 지난 4월 치른 시험에서 성 후보생은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부대 안에서 결혼식 올려
검정고시 합격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을 즈음, 성 후보생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윤 대대장에게 연락을 해 왔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해야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돈은 물론 참석할 하객 한 명 없는 성 후보생에게 결혼식은 너무 부담스러운 절차였다. 윤 대대장은 다시 한번 힘이 됐다. 부대가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부대 내 연못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주례는 대대장이, 부모님 역할은 주임원사 부부가, 하객 역할은 전우들이 맡았다. 축가는 부대 동아리 회원들이 준비한 이벤트로 대신했다.
예복대여 등 최소한의 비용은 부대가 부담했다. 윤 대대장은 결혼식 중 성 후보생 부부에게 자신이 직접 나무에 새긴 ‘부부’ 액자를 선물하며 평생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비록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전 부대원의 따뜻한 애정이 결합돼 지난 6월 12일 이 세상 어느 결혼식보다 아름다운 결혼식이 치러졌고 성 후보생과 여자친구는 부부로서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다.
▶부사관 시험 합격
꿈 같은 결혼식 준비는 윤 대대장이 진두지휘했고 성 후보생은 부사관 시험에 몰두했다. 공교롭게 시험일이 6월 11일, 결혼식이 12일이었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도 버거웠는데 부사관 시험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성 후보생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 인생에서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군대에 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둘씩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이 신기했고 ‘나도 되는구나’란 생각도 들었습니다.”(성 후보생)
“성 후보생이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잘 살아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젠 표정도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기적처럼 검정고시에 이어 부사관 시험도 합격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윤 대대장도 “이렇게 연속으로 합격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검정고시 합격과 결혼식, 부사관 시험 합격으로 윤 대대장과 성 후보생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며 2011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었다.
합격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성 후보생은 “이것 아니면 안 된다, 이번 시험을 망치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절박하게 매달렸기 때문일 것”이라며 마음이 짠해지는 대답을 내놨다.
상병이었던 성 후보생은 19일 부사관학교로 떠나면서 부사관 후보생이 됐다.
마지막까지도 “이제는 장기복무가 목표”라며 “후보생 때 성적이 군 생활을 좌우하니까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은 윤 대대장은 성 후보생의 작은 기적이 부대원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됐다고 털어놨다.
“부대에서 성 후보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가 보여준 놀라운 성취를 통해 많은 장병이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부대 관리가 절로 이뤄지는 것이죠. 앞으로 성 후보생이 멋진 부사관이 돼서 우리 군 내 희망의 증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건군 제63주년 국군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