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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과 색상

육군5군단전우회 2011. 7. 3. 21:39
근접전 땐 `화려한 색'·산개전투 땐 `어두운 색'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 95 라이플 연대의 진한 녹색 군복.

군복의 색깔은 인류의 역사 대부분에 걸쳐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색과 형태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무기가 발달하지 못해 모든 전투가 근접전·밀집전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칼이나 창과 같은 냉병기를 쓰던 시대라면 부대가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매우 조밀한 밀집대형을 형성해야 하며, 전투 시에는 피아가 뒤섞이는 혼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장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쉬운 피아식별, 그리고 사기진작을 위한 눈에 잘 띄는 색과 디자인이 도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은 화약병기의 보급 이후에도 수백 년간 지속된다. 당시 군대에서 주력으로 쓰이던, 흑색화약을 장전하는 활강식(강선이 없는) 머스켓은 발사속도가 느리고 유효사거리도 매우 짧았기에(보통 수십 미터) 결국 어느 군대나 밀집대형에 의한 접근전을 벌이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격전만으로 끝나지 않고 착검돌격까지 이뤄지면 전투의 양상은 더욱 혼전으로 치달았고, 당시의 흑색화약은 엄청난 연기가 발생했기 때문에 단 몇발의 일제사격만으로도 전장은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

효과적인 통신장비도 없던 시대에 이런 환경에서 지휘관이 부대를 통제하려면 피아식별이 쉬운 색깔의 복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자신의 위치를 숨기는 ‘위장’개념이 없던 것은 아니다.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은 일찍부터 나뭇가지나 어두운 색의 옷 등을 이용해 은신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독립군 측의 민병대는 사냥할 때 입던 어두운 색의 가죽옷을 사용, 영국군에 대한 매복 게릴라전을 벌였다.

특히 미국 독립군 민병대원들 중 상당수는 당시로서는 신무기인 라이플, 즉 강선이 총열에 파인 소총을 사용함으로써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00~300m의 교전거리를 달성했기에 밀집대형이 아닌 산개전투가 가능했고, 이로 인해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것이 전술적으로 엄청난 우위를 지니기 시작했다.

영국군은 이런 미국 독립군의 새로운 게릴라 전술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결국 중요한 식민지를 잃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무기와 복장이 장래의 전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뒤이어 벌어질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영국 육군에 큰 장점으로 다가오게 된다. 미국 독립군의 복장과 장비를 받아들여 ‘라이플 연대’가 영국 육군 내에 창설됐기 때문이다.

영국군의 라이플 연대는 진한 녹색 계열의 군복을 입고 라이플을 장비했으며 전투 시에도 대규모의 밀집대형이 아닌 소부대 단위로 산개해서 적과 싸웠다.

군복의 색상이 녹색 계통, 즉 어느 정도의 위장효과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최대한 적에게 들키지 않아야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장비한 라이플은 당시의 일반적인 머스켓보다 압도적으로 사거리가 길었기(약 200m) 때문에 은폐·엄폐를 잘하고 적에게 원거리 사격을 퍼부을 경우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다만 이들의 전술과 무기, 복장이 당시의 군대에서 일반화되기는 어려웠다. 당시의 라이플은 발사속도가 머스켓의 절반에 불과했고 그로 인해 접근전이 되면 라이플 연대는 대규모 밀집부대를 못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복의 대부분은 여전히 화려한 원색이었고, ‘위장’개념이 군복의 기본 개념으로 자리잡는 데는 수십 년이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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