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 놓지 않았다"
공군사관학교 훈련기가 추락해 교관과 훈련생이 숨진 가운데 이들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22일 비행훈련을 하던 훈련기가 추락한 충북 청원군 고은4리 마을 주민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훈련기에 타고 있던 고(故) 남관우(54·공사30기) 교관과 이민우(24·공사59기) 소위는 추락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치 않고 민가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고를 목격한 노모(57·여)씨 "마을 뒷산 쪽에서 오던 비행기가 오른쪽으로 기울더니 마을 가운데 있는 밭 옆 공터로 떨어졌다"며 "조종사들이 끝까지 빈곳을 찾아 착륙하려 애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80·여)씨는 "비행기가 떨어질 때 마을회관 정자에 사람들이 많았다"며 "조종사들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조종간을 끝까지 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훈련기는 민가와 불과 10여m 떨어진 마을 한 가운데 공터에 불시착했으며 남 교관과 이 소위는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버지의 뒤 이어 조종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던 남 교관은 부친 보다 먼저 저 하늘로 떠나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남 교관이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한 뒤 비행입문과정의 비행교수가 된 것은 남 교수의 아버지이자 1972년부터 1986년까지 초등비행교육과정(현재의 비행입문과정)의 비행교수로 재직했던 남상구(80·조종간부 5기)씨의 영향이 컸다.
남 교관이 초등비행교육과정을 위해 처음 212대대에 입과할 때에도 아버지 남상구씨는 212대대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남 교수는 전투기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도 유난히 교관 생활을 많이 했다.
대위 시절 제3훈련비행단에서 3년여를 고등비행 교관으로 근무했으며 탑건 스쿨이라 불리는 제29전술개발비행전대에서도 3년 가량을 교관으로 근무했다.
최고의 비행기량을 인정받던 남 교관이였기에 후배 조종사 양성에 있어서도 늘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대령 만기 전역이 4년여 남긴 2009년 9월에는 아버지처럼 비행교수가 되기 위해 먼저 전역 신청을 했고 같은 해 10월 아버지가 10년 넘게 후진 양성에 힘쓴 212대대의 비행교수가 됐다.
특히 엄격함 속의 인자함으로 학생 조종사들이 유난히 따랐던 남 교관은 밤늦게까지 비행연구에 몰두하는 후배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다과를 건네는 등 조종사의 길을 걷는 후배들을 남달리 아껴 주위를 슬프게 하고 있다.
남 교관과 함께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 소위는 공군사관학교 59기로 올해 3월 공군 소위로 임관해 4월 18일 비행입문과정에 입과했다.
평소 이 소위는 동기들에게 '하늘에서 멋지게 살아보자'고 늘 이야기했을 정도로 조종사의 꿈만을 위해 달려왔던 청년 장교였다.
공군사관학교 관계자는 "이 소위는 생도 때에도 인기가 많았고 늘 에너지가 넘쳐 주위에 활력을 줬다"며 "휴가를 받아 집에 가면 장애우 시설을 찾아 적극적으로 봉사하던 마음 따뜻한 젊은이였다"며 안타까워 했다.
한편 21일 오후 1시31분께 청원군 남일면 고은4리 마을회관 인근 공터에서 공군사관학교 소속 T-103 훈련용 비행기 1대가 추락, 남 교관과 이 소위가 순직했다.
남 교관과 이 소위의 빈소는 공군사관학교 내 항공의료원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23일 오전 8시30분 공군사관학교장으로 엄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