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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지구 전적비 "호국선열, 감사합니다-높은 산 깊은 골 첩첩…`향로와 건봉' 사수하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돌진하는 용감한 국군의 모습이 세워져 있는
 설악산지구 전적비. 비에는 설악산지구 전사문과 비문, 건립 개요
가 새겨져 있다.

 

높이 1708m.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1293m)·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點鳳山·1424m)·오대산(1563m)과 마주한다. 최고봉은 대청봉이다. 대청봉 남쪽에 한계령, 북쪽에 마등령·미시령 등의 고개가 있다.

위치상 산맥의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이라 하여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해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발달했다.

이처럼 사계절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설악산. 300만 명 이상이 매년 설악산을 찾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 설악산 지역이 6·25전쟁 중 치열한 격전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또 우리 군의 주요 거점인 향로봉과 건봉산 등을 적에 빼앗기지 않고 확보하게 된 것이 설악산지구 전투에서의 승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아침 일찍 설악산지구 전적비가 있는 설악산 소공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일찍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인파가 설악산을 찾아 속초시내에서 설악동 주차장까지 가는 데만도 1시간 30분이 걸렸다. 평소엔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역시 설악산은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차들로 가득 메워진 설악동 주차장 한편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기를 40여 분.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숨이 조금 가빠지려고 할 때쯤 매표소가 보였다. 전적비가 설악동 소공원 안에 있다 보니 표를 사야 들어갈 수 있었다.

매표소를 통과해 소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케이블카가 권금성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권금성을 올려다보니 기자가 지금 이곳에 온 이유를 잊어버릴 정도로 멋진 풍광이 눈을 현혹한다.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저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운데 화단을 기준으로 해 왼쪽 길을 따라 30여 m를 걷다 보면 왼쪽으로 설악산지구 전적비가 보인다.

이 비가 6·25전쟁 당시 11사단과 수도사단이 북한군과 싸운 설악산 지구 전투를 기념하고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설악산지구 전적비다.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산27 국립공원 내(설악산 소공원).

1978년 11월 10일에 완공됐으며 같은 해 12월 11일 제막했다. 전체 규모는 비 기단 높이 0.7m, 비 높이 3m, 동상 기단 높이 0.75m, 동상 높이 3.35m다.

동상은 조국과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돌진하는 국군의 용감한 모습을 조각했으며 전적비 위에 세워져 있다. 또 비에는 설악산지구 전사문과 더불어 비문, 건립 개요가 새겨져 있다.

 여기, 청봉 높은 봉우리
 돌 하나 옮겨 세우니,
 이는 천만 년을 이어 갈
 역사의 표말이다.

 바람, 꽃
 아름다운 저 능선을
 적구가 짓밟을 때
 맹호의 노호로
 이 봉우리 지켰으니,
 설악이 여기에 없었더라면
 어찌 향로와 건봉이 저기에 있으리오.

 오월 초목
 단심으로 물들인 충혼,
 이 돌과 더부러
 길이 남으리라.

비문에 새겨진 “설악이 여기에 없었더라면 어찌 향로와 건봉이 저기에 있으리오”란 글귀처럼 설악산지구 전투는 훗날 휴전을 앞둔 우리 국군에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기여한 전투로 기억된다.

설악산 전투는 중공군 1차 춘계 공세 시 국군 1군단의 11사단 및 수도사단이 북한군 제5군단과 치른 공세적인 전투다. 1951년 2월 삼척 부근에서 태백의 준령을 따라 북진한 국군11사단 및 수도 사단은 5월 7일 공격을 개시, 6월 9일까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 공격으로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향로봉 지역의 북한군 제5군단을 격퇴했으며, 설악산 일대를 확보하게 된다.

당시 적의 저항도 완강했었다. 더욱이 높은 봉, 깊은 골이 첩첩해 식량과 탄약이 미처 뒤따르지 못해 악전고투가 계속됐으며, 이에 공군 수송기의 공중 보급을 받아 가며 난관을 극복하고 공격 개시 5일 만인 12일에 목표를 점령하게 됐다.

그러나 이때 인제에서 하진부리로 침습한 중공군에 의해 대관령이 위험하자 수도사단은 그곳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가 적을 막아낸 다음, 5월 말에 다시 현지로 복귀 6월 초에 향로봉을 점령하고 이어 건봉산을 장악함으로써 오늘의 휴전선인 남강 기슭에 진출하게 된다.

현충일에 3일간의 연휴로 많은 사람이 이곳 설악산을 찾았다. 처가인 양양에 왔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이윤흠(43·서울 잠실) 씨는 “설악산을 여러 번 왔지만 이곳에 이러한 전적비가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며 “아름다운 설악산이 호국 영령들의 희생으로 지켜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해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 설악을 찾는다. 그러나 그들 중 몇이 이곳 설악이 호국 영령들의 피로 지켜진 것임을 기억하고 있을까.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친 젊은이의 넋이 서려 있는 이곳, 설악을 오르는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 전 이 비 앞에 고개 숙여 호국 영령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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